- 평점
- 8.3 (2013.01.01 개봉)
- 감독
- 이안
- 출연
- 수라즈 샤르마, 이르판 칸, 라프 스폴, 아딜 후세인, 타부, 제라르 드파르디외
바다 한 가운데, 좁은 구명보트에 단 둘이 남게 된 벵갈호랑이와 소년 파이의 생존 이야기.
스포일러 有
인도 폰디체리 마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는 가족들과 사는 우리의 주인공, 세 가지의 신앙을 믿는 소년 피신은 발음상 오줌싸개인 피싱과 비슷한 이름을 가지고 있어 늘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한다.
아빠와 절친인 수영선생님이 어느 날 방문한 파리의 멋진 수영장 이름을 따, 그대로 이름을 갖게 되었던 피신은 더이상 친구들에게 놀림받고 싶지 않아, 별칭인 파이를 만들어 수업 시간마다 이름을 설명하고 이윽고 원주율 파이 3.14이후의 값을 모두 암기하는 전설이 되고 만다. 스스로를 위한 생존법. 수영장의 이름을 가진 신을 궁금해하는 무한대의 파이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좋아하는 소녀도 만나고, 동물원의 동물들과 교감도 나누며 일상을 보내는 파이에게, 동물원과 인도를 떠나야 할 날이 찾아온다. 정부의 지원이 끊겨, 더 이상 동물원을 운영할 수 없어 캐나다로 가서 동물들을 팔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해서 동물원 가족 모두와, 파이 가족 모두 침춤호를 타고 캐나다를 향한 항해를 시작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폭풍우에 화물선은 침몰하고, 파이 혼자만 목숨을 구하게 되는데 가까스로 구명선에 탄 얼룩말과 굶주린 하이에나. 바나나 더미를 타고 온 오랑우탄의 합류는 긴장감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다.
하이에나는 다리를 다친 얼룩말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결국 오랑우탄마저 목숨을 잃는 순간 눈 앞에 닥친 또 하나의 놀라움은 바로 벵갈 호랑이 리처드 파커의 등장이다.
결국 리처드 파커와 보트에 단 둘이 남게 된 파이는, 배 안에 있던 생존 지침서와 비상식량을 토대로 리차드 파커와 공존을 위한 생존 방법을 도모한다. 태평양 한 가운데에서 만나는 어마어마한 고래와 하늘을 나는 물고기, 반짝이는 해파리, 미어캣이 사는 신비의 섬, 색색깔로 변하는 망망대해 바다에서 리처드 파커와 파이는 누구도 믿지못할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200여일의 시간을 지나 끝내 살아남은 파이와 리처드 파커.
보험사 직원들에게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의 생존일화를 들려주자, 좀 더 현실적인 스토리를 원하는 그들에게 들려주는 또 하나의 이야기는 느긋하게 혹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이들에게 던지는 무거운 무게와도 같을지 모르겠다.
파이가 동물대신 넣었던 사람들의 조합. 하이에나는 성질나쁜 주방장으로, 다친 얼룩말은 행복한 불교신자 일본청년으로, 오랑우탄은 힘이 없었던 엄마로, 그리고 리처드 파커 호랑이는 자기 자신으로 빗대어 들려주던 믿지못할 현실같은 이야기들.
자, 그대들은 과연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진실이 어떻든, 믿고싶은 것이 진실이 된다는 것.
라이프 오브 파이는, 얀 마텔의 스테디셀러 파이 이야기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2002년 영국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부커상 문학상을 수상했고, 최고의 판매고를 올리고, 10년간 꾸준한 스테디셀러가 된 작품. 세 개의 대륙과 두개의 대양, 그리고 파이의 광활한 상상력과 바다를 넘나드는 표현을 감히 영화에서 이루어내리라 상상도 못한 원작자 얀 마텔의 이야기를 스크린에서 실현시킨 이안 감독의 첫 번째 3D영화이기도.
바다에 덩그러니 남겨진 무서운 벵갈 호랑이와 소년의 이야기는 우리가 바라는 해피엔딩답게 인간과 동물의 우정담을 그린게 아닌, 지독히도 처절한 생존과 인간의 본능, 신의 존재, 자기 자신과의 싸움, 공존과 윤리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자극하는 일종의 모노드라마를 보는 것과도 같았다. 넋놓고 망망대해의 아름다움과 바다가 주는 선물을 신비롭게만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는 이야기.
그저 연약하기만 한 했던 소년이, 호랑이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혹은 하나뿐인 친구이자 말 상대인 생명체 리처드 파커를 잃지 않기 위해 서로 살아가는 법을 스스로 깨우쳐야 했던 그 고통의 시간들을 견디고 비로소 살아남았다고 안도의 숨을 내뱉는 순간. 그저 이 이야기가 결코 아름다운 전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반전아닌 반전은 내 머릿 속을 엉망으로 흔들어놓았다.
멕시코만에 도착했을 때, 파커는 파이의 바람대로 작별인사도 해주지 않고 숲 사이로 뒤도 돌아보지않고 떠나버렸다.
영화내내 반쯤 장막으로 가려져있던 보트, 그리고 늘 그 안에 있었던 리처드 파커. 엄마인 오랑우탄이 죽고 나서야 장막 안에서 튀어나온 파커는 파이가 가지고 있던 본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살기위한 원초적인 본능. 그리고 본능의 파커와 이성의 파이의 대립이다. 주방장이 일본 청년을 죽이고, 엄마까지 죽이자 결국 주방장을 죽일 수 밖에 없었던 파이. 그리고 죄책감의 윤리와 살아야하는 생존본능.
미어캣이 사는 신비의 섬, 즉 식인섬에 도착했을 때 리처드 파커마저 두려움에 섬을 떠나야 했던 이유는 바로 파이가 맛있게 먹던 열매에서 찾아낸 사람의 치아. 결국 파이도 살기위해 주방장을 먹지않았을까라는 생각을 꺼내볼 수 있다.
그래서 그 힘든 시간을 함께했던 리처드 파커가 그렇게 떠나버린 이유.. 살아남은 파이의 이성이 더이상 본능을 따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으리라. 참으로 기가막힌 은유 아니겠는가.
그리고 리처드 파커의 이름 유래로 찾아낸 이야기 미뇨넷 호 사건은 파이의 두 번째 이야기를 더 골똘히 생각해보게 만들기도 했다. 아.. 이 얼마나 좋은 영화던가. 이토록 오랫동안 생각에 잠길 수 있게 만드는 힘과 에너지.
새해 첫 영화가 오랫동안 가슴에 남을지도 모르겠다. 진실이 어떻든 간에 결국 믿고 싶은 것이 진실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리처드 파커 이름의 유래, 미뇨넷호 사건
19세기 영국에서 실제 벌어진 재판에 관한 이야기로 사건은 이렇다.
당시 발행된 한 신문은 사건의 이면을 자세히 소개했고 '미뇨넷 호 생존자의 이야기보다 더 슬픈 해난사고는 없었다'고 했다. 배는 희망봉에서 약 2000km 떨어진 남대서양에서 발견되었다.
배에 탄 건 4명, 더들리는 선장이었고 스티븐스는 1등 항해사, 브룩스는 선원이었다. 4번째 승무원은 배의 잡무를 보던 17세 소년 리처드 파커였다. 파커는 고아라서 가족이 없었고, 배를 타고 장기간 바다에 나온 건 처음이었다. 사건의 정황에는 이견이 없었다. 파도가 배를 강태했고 미뇨넷 호는 침몰했다. 승무원 4명은 구명보트로 탈출했다. 식량은 마실 물도 없이 순무 통조림 두 개 뿐이었다.처음 사흘간은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넷째 날에는 순무 통조림 하나를 따서 먹었다. 그 다음 이튿날엔 거북 한 마리를 잡았다. 남은 순무 통조림 하나와 거북을 먹으며 승무원들은 며칠을 버텼다. 그 다음 8일간은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파커는 몸이 쇠약해졌다.
19일째, 선장인 더들리는 제비뽑기를 하자고 제안한다. 제비뽑기를 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죽어줄 사람을 정하자는 것이었다. 브룩스는 반대했다. 제비뽑기는 무산된다. 이튿날에도 구조해 줄 배가 보이지 않자 더들리는 브룩스에게 고개를 돌리라고 말한 뒤, 스티븐스에게 파커를 죽여야겠다고 몸짓으로 말한다. 더들리는 기도를 올리고 소년에게 때가 됐다고 말한 다음 주머니칼로 소년의 경정맥을 찔러 죽였다. 양심때문에 그 섬뜩한 하사품을 받지 않으려던 브룩스도 태도를 바꾸었고 나흘간 세 남자는 파커의 피와 살을 먹었다. 그리고 선원들은 구조된다.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센델-
귀국 후 이 사건은 영국에서 재판을 받고 모살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특사에 의해 6월징역으로 감형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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