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은 우리나라 전통 명절로, 설 날 이후 처음 맞는 보름날 즉 음력 1월 15일 날이다. 우리 조상들은 어찌 보면 설날보다 더 성대하게 지냈는데 보통 그 전날인 14일부터 행하는 여러 가지 풍속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원래는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15일 동안 이 시기에는 빚 독촉도 하지 않을 만큼 옛날에는 큰 축제일로 삼았다고 한다. 또한 어른들께 세배를 드릴 수 있는 날의 마지노선으로 정하고 있는 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공휴일로 지정이 되지 않아 현대에는 존재감이 많이 사라진 듯 하지만, 북한에서는 여전히 공휴일로 지정하여 정월대보름에 하는 풍습들을 실제로 행하며 즐기는 날이라고 한다.
정월 대보름에 하는 우리 풍속 놀이
옛날에는 대보름 전날 밤에 아이들이 집집마다 밥을 얻으러 다녔으며, 잠을 자면 눈썹이 새 하얗게 샌다고 믿어서 잠을 참으며 날을 새기 위해 돌아다녔던 것 같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는 부럼 깨기와 귀밝이술을 마셨으며, 자정이 다 되는 시간에는 달집 태우기 및 쥐불놀이를 하며 풍년을 기원하며 대보름을 마무리 짓는다.
- 잠을 자지 않고 날을 새기 위해 집집마다 밥 얻으러 다니기 - 잠이 들면 눈썹이 하얗게 샌다.
- 부럼 깨기 - 아침 일찍 껍질이 남아있는 견과류 등을 나이 수만큼 깨물어 먹는 관습.
- 귀밝이술 마시기 - 아침 일찍 부럼과 함께 찬 술을 마시는 관습 : 이명주라고도 하며, 귀가 밝아지고 귓병을 막아주며 1년간 좋은 소식만 듣기를 희망하는 술인데 아이들에게 주기도 했다고 한다.
- 달집 태우기 - 모아놓은 집단과 생소나무 가지를 엮어 무더기로 쌓아 올린 '달집'을 세운다음 풍년을 기원하며 소원을 부는 풍습. 달집이 잘 탈수록 마을이 태평하고 풍년이 될 징조이며, 풍물패가 풍악을 울리며 주변을 맴돈다. 아직도 지방의 작은 소도시나 마을에서 풍물을 울리는 행사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 쥐불놀이 - 우리나라 전통 민속놀이로, 대보름 전 날에 논둑이나 밭 둑에 불을 지르고 돌아다니며 노는 놀이다. 작은 구명을 여러 개 뚫어놓은 깡통에 짚단등을 넣고 불을 놓고 빙빙 돌리며 논 밭의 해충피해나 쥐의 피해를 줄이고자 했다. 상징적으로 액운과 재앙을 태운다는 염원을 담아 쥐불을 회전시키며 노는 건데, 요즘은 화재의 위험성도 있어서 시대에 맞게 LED 쥐불놀이로 많이 대체되었다고 한다.
- 달맞이 - 초저녁에 달이 떴을 때 보름달 보며 소원 빌기
- 다리밟기 - 말 그대로 다리를 밟는 놀이다. 밟은 사람의 다리가 튼튼해지라고 하며, 다리병을 앓지 않는다고 한다.
- 더위 팔기 - 남에게 더위를 파는 풍속. 아침 일찍 친구나 이웃의 이름을 부르고, 대답을 하면 '내 더위 사가' 또는 '내 더위 네 더위 맞더위'라고 외친다. 그러면 대답을 한 사람이 더위를 가져가게 된다. 반대로 더위 팔려는 걸 눈치채고, 더위를 팔려고 할 때 대답대신 '내 더위 사가라'를 외치면 이름을 부른 사람이 오히려 더위를 사게 된다.
- 액막이 연 날리기 - 연을 날리다 줄을 끊어 멀리 날아가게 하는 의식.
- 복토 훔치기 - 부잣집이나 번화가의 흙을 가져다가 자기 집의 부뚜막에 발라 한해 생업이 잘되기를 기원하는 풍습.
정월대보름이 우리나라 가장 큰 명절이라고 할 만큼 이렇게 여러 가지 풍습과 놀이 또한 많았는데,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과 친구들과 아무래도 가장 많이 했던 건 더위 팔기였던 것 같다. 서로 더위를 팔며 웃기도 했고, 잠을 자면 진짜 눈썹이 하얗게 될까 걱정하며 일어나서 가장 먼저 거울을 확인했었던 기억도 있다. 요즘은 달을 보며 소원을 빌거나 부럼 깨기 정도로 할 수 있는 것들만 남게 된 것 같은데, 기회가 된다면 우리의 소중한 풍습이 잊히지 않게 아이들과 할 수 있는 걸 해보면 좋을 것 같다.
이 밖에 정월대보름 다음날인 1월 16일을 '귀신날'이라고 해서 이 날 집 밖을 나가면 귀신이 들러붙기 때문에 외출을 피하고 집에서 지냈다고 한다. 요즘처럼 학생들은 학교에도 가야 하고 직장인들은 돈을 벌러 반드시 나가야 하는데, 어쩌란 말인가.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설부터 대보름까지 신나게 놀고 하루정도 조용히 지낸 뒤 일상복귀를 하기 위함이 아닌가 하는 해석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쉴 수 있는 날이라면 정말 좋겠지만 말이다.
정월대보름에 꼭 먹는 우리 음식
정월대보름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바로 오곡밥과 건나물인데, 요즘처럼 음식이 풍족한 시대에는 소박한 음식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 조상님들은 겨울철에 구할 수 있는 모든 음식을 동원하여 잘 먹고 잘 노는 날이었다. 견과류도 그렇고 온갖 묵은 나물로 입맛을 돋우며, 봄이 되면 다가올 농사철을 대비해 잘 먹고 영양을 보충하려 했던 것이다.
- 오곡밥 - 찹쌀, 기장, 수수, 서리태, 적두를 섞어 풍년을 기원하는 잡곡밥이다. 왜 꼭 다섯 가지 곡물을 넣은 밥이었나 하면, 가을 추수 때 가장 잘 자라던 곡식을 모아 한 밥공기에 담으니 다섯 가지의 곡식이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일반쌀이 아닌 찹쌀을 써서 찰밥이라고도 한다.
- 진채(묵은 나물이라는 뜻) - 박, 버섯, 콩, 순무, 무잎, 오이, 가지껍질 등을 가리키는데 여름에 더위를 타지 말라고 이 나물들을 준비했다는 조선시대 기록이 있다. 보통은 열아홉 가지나 준비했다는데, 없으면 세 가지 정도로 줄어들기도 한다. 진채에 포함된 나물 이 외에 호박잎, 도라지, 콩나물등을 쓰기도 하는데 요즘엔 아무래도 구하기 쉬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 부럼, 귀밝이술, 팥죽, 약밥등을 먹는다.
정월대보름이 되면 엄마가 꼭 해주시던 오곡밥과 나물이 생각이 나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잡곡밥을 좋아하지 않던 어린 시절에는 참 먹기가 싫었었다. 그나마 김을 싸서 겨우 먹었던 기억이 난다. 나물 또한 마른 나물들이어서 정말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몰라 안 먹었었다. 친정집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 이제는 반찬가게에서 간단하게 몇 가지 사 먹는 것으로 대체하지만 우리 엄마가 내게 해주었듯 내 아이들에게도 이제 내가 해주어야 할 차례인 것 같다.
정월대보름의 유래 - 사금갑射琴匣
정월대보름의 기원과 관련된 전설 중에 사금갑이라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는데, 이는 삼국유사 기이 제1편 소지왕 이야기이다. 신라시대에 임금인 소지왕이 정월대보름날 천천정으로 향하기 위해 궁을 나서는데, 갑자기 까마귀와 쥐가 시끄럽게 울었다. 그리고 쥐가 왕에게 말을 했는데,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따라가 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신하를 시켜 까마귀를 따라가 보게 하였다. 신하가 까마귀를 따라가다 연못에 다다랐는데, 돼지 두 마리가 싸움을 하고 있어서 돼지를 보다가 까마귀를 놓쳐버렸다. 그리고 그 연못에서 노인이 나와 신하에게 봉투를 주며 말하기를, '그 봉투 안의 글을 읽으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고, 읽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신하는 임금에게 있었던 일을 전했고, 임금은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다 한 사람이 죽는 게 나은 듯하여 편지를 읽지 않는 것을 택했다.
그에 옆에 있던 일관이 말하기를, '전하, 두 사람이라 함은 보통사람을 말하고, 한 사람이라 함은 전하를 말하는 것 같으니 편지의 글을 읽으시옵소서'라 하였다. 일관의 말이 일리가 있어 임금은 편지를 읽어보았다. 편지에는 사금갑射琴匣: 거문고 갑을 쏘시오.라고 적혀 있었다. 임금이 거문고 갑을 활로 쏘고 열어보니 두 사람이 활에 맞아 숨져있었는데, 왕비와 한통속이 되어, 임금을 해치려 했던 중과 왕비였던 것이다. 그 후로 정월대보름을 烏忌日(오기일)이라 해서 찰밥을 준비해 까마귀에게 제를 지내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이후 찰밥이 발전되어 약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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